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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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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둘레는 500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강화도 방어의 최전선 역할을 하였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격전지였다.

성곽 우측의 소나무와 성벽에는 육지 쪽에서 날아온 대포와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 간척사업으로 성의 안쪽은 육지이지만 당시에는 앞 뒤로 바다가 있었다고 한다.

외적이 한강으로 들어가기 위해 초지진 앞을 지나야 했는데 당시 우리 관군들의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강화도에는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만약 강화도에서 3개 이상의 유적지를 관람하고자 한다면 매표소 한 곳에서 할인 된 가격에 한번에 표를 끊을 수 있다. 65세 이상 어르신이나 국가유공자, 장애인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며 신분증을 제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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