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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풍경과 신륵사 일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여주시 상동에 위치한 영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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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루는 1983년 경기도문화재 자료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건축 형태로 보아 18세기 말경에 건축 된 것으로 추측되며 공원 안에 여주 창리 삼층석탑(보물 91)과 여주 하리 삼층석탑(보물 92)이 있다.

 

 

영월루는 여주시 상동 영월근린공원에 있다.

공원 내에는 영월루 외에도 현충탑과 과거 여주 출신 역사적 인물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있다. 또 다른 한쪽으론 그리스인 참전 기념비와 세종대왕의 업적으로 역사적으로 서사한 벽화 거리가 있다.

영월루 뒤쪽 남한강에 닿는 곳에는 바위 절벽이 있는데 "마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 영월루에서 본 여주 풍경

 

 

▲ 여주 창동, 하동 삼층석탑 (보물 91, 92)

여주 하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본래 하리(지금의 하동)의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이다.

여주 창리 삼층석탑 또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창리(지금의 창동)의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신라시대 석탑에 비해 투박한 점, 지붕돌의 받침이 5단이 아닌 3단인 점, 지붕돌과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든 점 등으로 미루어 봉 고려 중기 이후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판단 된다.

 

▲ 여주 마암

마음은 여주 지명의 유래가 되는 황마와 여마가 이곳에서 솟아났다  하여 마암일 부르게 됐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려시대 여주의 지명이 황려라 불렀다고 한다. 즉, 여주의 지명은 골내근현  황효 - 황려 - 여흥 - 여주로 변천되었는데 화려 지명은 이 마암고 깊은 과나련이 있다. 여주 출신 대문호 이규보의 한 시중에 "두 마리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이 때문에고을 이름이 황려라네"라고 적은 내용이 있다. 또한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 민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주시를 대표하는 자연경관 유적이다. 이 곳은 이규보, 이색, 서거정, 최숙정, 김상현, 정약용, 김창협 등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겨던 명소였다.

 

바위에는 흐릿하게 보이지만 마암(馬巖)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세겨져 있다.

 

세종대왕의 고장 답게 도시 곳곳에 한글 디자인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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