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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가볼만한 곳,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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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역사, 문화의 고장이라 할만큼 다양한 유적지와 고유 문화를 잘 계승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번에 시간을 내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고구려비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 중원고구려비 >

비석의 내용 중 여형여제란 형제 관계 내지 상하 관계를 말하는데 신라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의 보호를 받고 성장했다는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특히 5세기 고구려가 중원을 차지했을 무렵, 고구려가 신라의 종주국 위치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외관은 계속 정비중에 있습니다. 외부 공원이 완성되면 가족단위 쉼터와 교육 장소로 아주 좋을 거 같습니다.

 

< 고구려비가 세워져 있던 위치 >

충주 입석마을은 이름 없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해서 입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비석은 오래 전 부터 이 자리에 세워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비석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1979년 우연히 지역사회 역사 연구회 동호인 모임에서 처음 이 비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석마을 주변에는 용전리, 봉황리, 천룡산, 을궁산, 태자뜰 등 고대의 왕실이나 최고의 지배층을 연상할 수 있는 지명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충주 고려비가 세워진 고구려의 최전선이자 고구려 제2의 도성이었떤 국원성의 명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충주 중원고구려비는 정확한 연대측정은 어렵지만 449~495년 장수왕 때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475년(장수왕 63)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장수왕의 공격에 한성을 빼앗긴 개로왕마저 전사하자 백제는 수도를 옹진(지금의 공주)로 옮기게 됩니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장악한 고구려는 기세를 몰아 한강 상류인 충주를 넘어 금강 유역까지 진격해 백제를 압박합니다. 고구려의 남진을 보여주는 유적들은 대부분 교통로를 장악하기 위해 고구려군이 축조한 소규모 성곽 등 군사적 성격이 강합니다.

광개토대왕의 북진정책은 잘 알려져 있고 장수왕은 남진정책을 함께 펼치며 한반도 전역에 영향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은 만큼 고구려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다녀와 봄직한 유익한 역사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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