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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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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기도 하며, 영월 단종과도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리 공부를 하거나 입구에 위치한 안내소에서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를 권하고 싶다.

입구에 당간지주가 있다는 건 이곳에 예전에 절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당간지주는 소수사지 당간지주라고 한다.

소수서원은 소수사가 있던 절터에 위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자바위>

소수서원은 최초 서원이며 요즘의 사립대학과 비교할 수 있다.

입구를 조금 들어서면 소수서원을 끼고 죽계천 흐르며 한쪽에 경자바위가 있다.

주세붕이 쓴 '敬'과 이황이 쓴 '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정축지변 때 세조에 의해 학살된 순흥부(영주의 옛 지명) 주민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경'자에 빨간 칠을 한 후 제를 올렸다고 한다.


단종을 영월에 유배한 세조(수양대군)은 친동생이였던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 복위운동을 준비하다 관노의 밀고로 세조의 분노를 사게 된다.

군사를 보내 순흥부의 양반, 노비, 짐승 할 것 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모두 참수하여 죽계천에 시체를 버렸는데 그 핏물이 죽계천을 붉게 물들이고 순흥부엔 붉은 강물은 흘렀다고 한다.

이를 정축지변(1457년)이라 하며 이 사건으로 청령포에 유배 중이던 단종은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묘역은 남양주에 있으며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해서 사릉(思陵)이라고 한다.

소수서원은 영주를 가로지르는 내천이며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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