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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일화로 잘 알려진 벽계수의 문막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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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수로 알려진 이종숙(李琮淑)은 역사적인 기록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는 세종대왕의 17번째 아들인 영해군의 손자, 즉 세종대왕의 증손자로 알려져있다.

 

청산리(靑山理)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靑山裡 碧溪水 청산리 벽계수 : 푸른 산에 흐르는 맑은 물

一到滄海 일도창해 : 푸른 바다로 한 번 흘러가면

明月 명월 滿空山 만공산 : 밝은 달빛 빈 산에 가득하니

 

고려 말,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옛 조상들은 시를 지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곤 했다.

위의 시는 황진이가 벽계수 이종숙을 유혹하기 위해 읊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종숙은 처음부터 벽계수로 불리워졌던 것이 아니라 이 시로 인해 후대에 벽계수로 불리워 졌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황진이는 왜 이종숙을 벽계수(碧溪水)라고 했을까?

 

알려진 바로는 벽계수는 당시대 최고의 명기, 황진이를 만나기 위해 손곡 이달 선생에게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손곡 선생이 이르기를,

벽계수 그대가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다가 올 것이다.

만약 황진이가 다가와 곁에 앉거든 관심을 두지 말고 무심하게 일어나 말을 타고 돌아가는데,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황진이가 벽계수를 찾아올 것이라 했다.

 

벽계수는 손곡 선생의 말대로 하여 작은 나귀를 타고 황진이를 지나 가는데 돌아가는 벽계수의 뒤에 황진이가 시를 읊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시를 듣고가던 벽계수가 뒤를 돌아보다 나귀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를 본 황진이는 벽계수를 일러, 명사가 아니라 한낱 풍류량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고 벽계수는 매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록이 남겨진 것은 아니나 황진이와 벽계수의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기생 황진이는 본인을 명월에 비유했고 양반인 이종숙을 벽계수에 비유했다.

명월은 한 자리에 절개를 지키며 머물러 있지만 벽계수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냇물이다.

기생이 양반을 비꼬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황진이의 기개가 어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벽계수 이종숙의 묘역은 원래 경기도 시흥에 있었으나 최근에 그 후손이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로 이장한 것이라고 한다.

문막 동화사 오르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동화주유소, 우성사료, 연세메니컬병원(구-수병원) 뒤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나면 동화2리 마을이 보이는데 길을 따라 직진해 올라가면 아스팔트 도로가 끝난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벽계수 묘역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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